베토벤 교향곡 5번, 흔히 '운명교향곡'이라고 불리는 곡이다. '운명'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베토벤이 한 말에서 나왔다. 어느 날 베토벤의 제자가 1악장 서두의 주제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 베토벤이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들긴다"라고 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운명'교향곡이라는 별칭은 다른 나라에서는 쓰이지 않고,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그렇게 부른다.
베토벤 운명은 3번 '영웅'을 완성한 후인 1804년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곡들 때문에 작업이 미루어지다가 1807~1808년경에 집중적으로 작곡되어 완성되었다. 그때 베토벤은 6번 전원도 작곡을 병행하였다. 그래서 5번의 초연이 1808년 12월 22일에 있었는데, 같은 날 6번도 초연이 이루어졌다. 초연이 이루어지는 연주회 때 6번이 먼저 연주되어, 세상에 공개된 것은 5번이 6번보다 조금 늦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베토벤은 큰 시련을 겪고 있었다. 30대 중반의 베토벤의 귀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고, 나폴레옹이 빈을 점령하는 등 그가 사는 세상도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러니 이 교향곡을 운명을 극복하는 인간의 의지와 환희를 그렸다고 해석하는 것도 그럴 듯하다. 곡을 들으면 1악장에서 시련과 고뇌가, 2악장에서 다시 찾은 평온함이, 3악장에서 쉼 없는 열정이, 4악장에서 도달한 자의 환희가 느껴진다.
간결하며 단 한 음도 버릴 데가 없는 치밀한 구성력 이 곡은 초연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결국 클래식을 상징하는 곡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서두의 4개의 음 주제가 2차 대전 당시 BBC 뉴스의 시그널로 쓰여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이 리듬이 모르스 부호 V, 즉 승리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전쟁시에는 적국의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꺼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곡이 독일과 적이었던 영국의 국영 방송의 시그널로 쓰였다는 것은, 누구나 이 곡이 인간 사이의 갈등이나 전쟁 따위는 뛰어넘는 인류의 명곡을 인정했다는 것이 아닐까?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어릴 적 레코드 가게는 물론 동네 이발소에도 그의 사진이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지휘에 열중하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었다. 역시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눈을 감고 춤을 추듯 지휘하는 모습일 것이다. 물론 만년에는 수술 후유증과 불편한 몸으로 다시 눈을 뜨고 지휘하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모습은 역시 ‘눈 감은 카라얀’이다. 언뜻 작위적인 자기연출 같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야말로 카라얀이 만들고 싶어 했던 ‘이상적인 오케스트라’에 대한 욕망의 상징적 모습이다. 카라얀은 종종 생각 속의 이상적 오케스트라와 눈 앞에 놓여있는 현실의 오케스트라를 합일시키려 한다고 말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