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우리들을 건드리지 말아요"

  "아이구, 올해는 참 많이도 열렸데이, 이 오동통하게 살찐 꼬투리들 좀 봐라!"

이가 몇 개나 빠진 할머니가 호물호물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기쁨이 가득한 목소립니다.

텃밭에서 푸릇푸릇하고 노릇노릇하게 익은 완두콩 꼬투리를 따던 할머니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오동통하게 살찐 꼬투리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줄도 몰랐습니다.

"아이구, 큰일났데이. 애써 맺은 열맨데 이 일을 우짜노."

땅에 떨어진 완두콩 꼬투리는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데록데록.

꼬투리 속에 든 다섯 개의 완두콩은 서로서로 눈동자만 굴렸습니다.

"얘들아,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데이."

땅에 떨어진 완두콩 꼬투리는 어머니처럼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외톨이가 됐데이. 할머니 바구니에 들어갔으면 할머니 밥반찬이 되든 씨앗이 되든 했을 텐데 우리는 이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게 됐데이. 비를 맞아 이대로 썩어버릴지, 들쥐나 산비둘기 먹이가 될지 아무도 모른데이. 그러니까 너거들은 우야든동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몸 간수 잘 해서 좋은 세상 보내거래이."

"좋은 세상이 뭐래요?"

다섯 중에서 셋째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이지."

"우와 신난다. 나는 좋은 세상 만나면 이 세상 길이란 길은 다 다녀봐야지."

첫째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을 오르고 싶어."

둘째의 말입니다.

"나는 산보다 높은 하늘까지 오를거야."

셋째의 말입니다.

"나는 우리를 버리고 간 할머니 집을 찾아갈거야."

넷째의 말입니다.

"나는 씨앗이 될거야. 내년에 다시 싹을 틔울 수 있는 씨앗이 될거야."

막내의 말입니다.

"흐이그, 녀석들. 꿈이사 야무지구마는……. 우야든동 몸 간수나 잘 하거래이. 몸을 잘 말려야 산으로도 가고 씨앗도 될 테니께."

완두콩 꼬투리는 탱탱한 몸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바싹 말렸습니다. 그리고는 어느 햇볕 좋은 날 두 쪽으로 좌악, 갈랐습니다.

"우와!"

다섯 개의 완두콩은 햇볕 터지는 소리를 냈습니다.

"이게 바로 좋은 세상이구나!"

역시 셋째가 말했습니다.

"길은 찾아 가야지."

첫째가 말했습니다.

"산으로 가야지."

둘째가 말했습니다.

"하늘까지 갈꺼야."

셋째가 말했습니다.

"할머니 집으로 갈꺼야."

넷째가 말했습니다.

"훌륭한 씨앗이 되어야지."

막내가 말했습니다.

"이게 뭐야.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완두콩 냄새가 나지?"

다섯 개의 완두콩은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곁에 커다란, 아주 커다란 들쥐 한 마리가 긴 수염을 파밧거리며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눈이 반들반들 빛나는 들쥐였습니다.

"아유, 요 귀여운 것들. 벗기기도 힘드는데 알아서 홀랑 벗고 나왔구나. 아유, 이 맛있는 냄새! 내가 배고픈 걸 어떻게 알고 왔지?"

들쥐는 배가 볼록하도록 냄새를 맡았습니다.

"뭐라고요? 우리를 잡아먹겠다고요?"

셋째였습니다.

"잡아먹긴, 너희들이 접시째로 다가왔지."

"아니지요. 우리는 서로서로 길 찾아 가야해요."

첫째가 말했습니다.

"산으로도 가고 하늘로도 가야해요."

셋째가 말했습니다.

"할머니 집으로도 가고 씨앗도 돼야지요."

막내가 말했습니다.

찌익찌익.

들쥐가 고개를 젖히며 웃었습니다.

"세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녀석들. 그것은 너희들하고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 씨앗되는 일만 빼놓고. 세상은 소풍 온 풀밭이 아니거든. 그냥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것 밖에 없어. 나는 몹시 배가 고픈 들쥐 '나루'야."

들쥐 나루는 첫째를 앞발로 슬쩍 건드렸습니다.

나루 몸에서 비릿하고 찌릿한 냄새가 확 풍겼습니다.

"우왁!"

막내가 토할 것 같이 입을 가리며 획 돌아앉았습니다.

"우리를 건드리지 마요.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좋은 세상이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요."

셋째가 막내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습니다.

"맞아요."

"맞아요."

둘째도 넷째도 막내를 둘러싸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그냥 놔 주세요. 아니면 막내 하나라도 살려주세요. 씨앗이 되고 싶은 착한 막내거든요. 막내가 있어야 또다른 우리가 있는 거예요."

첫째도 막내를 둘러싸며 말했습니다. 네 개의 완두콩은 막내를 가운데 두고 동그란 하나가 되었습니다. 동그란 하나는 나루가 한 입에 넣기에는 너무 컸습니다.

"그리고 말이에요. 우리를 모두 씨앗으로 만들어 주면 내년에는 우리의 반을 나루님께 드리겠어요. 두 개 열리면 한 개를, 열개 열리면 다섯 개, 백개 열리면 오십개를요."

첫째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으으음!"

나루는 입맛을 다셨습니다. 동그란 하나는 나루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산처럼 큰 하나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는 나루가 아주 어릴 적에 본 어머니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제발, 이 아이들을 살려주세요."

털이 보송하고 이제 막 기기 시작하는 나루네 다섯 형제들을 뒤로 감추며 나루 어머니가 늙은 암코양이에게 말했습니다.

"힘들어. 나는 지금 너무 배가 고파."

암코양이가 날카로운 발톱을 꺼냈습니다.

"야옹!"

암코양이가 번개처럼 나루 어머니를 덮쳤습니다.

"멀리 가서 씩씩하게 살아!"

나루 어머니도 암코양이에게 번개처럼 달려들면서 뒷발로 나루네를 힘차게 밀치며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으음!"

나루는 눈을 감았습니다.

살아, 살아, 살아…….

어머니 목소리가 메아리지면서 얼굴은 점점 더 크게 떠올랐습니다.

'그래. 내 생각이 틀렸어. 먹는 것이 전부가 아니야.'

나루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면서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핫핫핫! 내게 반을 준다고? 좋아, 좋아! 아주 좋은 일이야. 그러면 나는 그 반을 또 너희들에게 줄테다. 그 반에 반, 반에 반도. 그 때까지 나는 굶어도 좋아.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단 말이야. 핫핫핫!"

나루는 고개를 젖히며 한껏 웃었지만 눈두덩은 자꾸 뜨거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래. 나는 너희들이 다시 새싹을 틔울 때까지 잘 간직하고 아무 것도 다가오지 못하게 지켜줄 거다. 오래오래.'

나루는 하늘 가득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며 씨앗 같은 마음 하나를 간직했습니다.


아동문학가 배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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