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어렵사리 탑승한 지하철 1호선 전동차 기관실에는 침묵만 흘렀다. 지난 9일 용두역에서 한 차장이 용변을 보던 중 선로로 떨어져 뒤따라오던 전동차에 치어 숨진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터진 탓일까. 기관사 K(45)씨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조카뻘 되는 기자가 어색한 분위기에 우물쭈물하고 있자 이내 한 마디 던졌다. “일부러 아침을 거르고 나와. 밥을 먹으면 화장실 가야 하잖아. 물도 정말 참기 힘들 때만 마시고….” K씨는 용두역 사고는 ‘언젠가는 터질 사고였다’고 했다.

시청역을 출발한 전동차 안에는 0.5ℓ 정도의 페트병이 놓여져 있었다. 쉴 새 없이 운전대를 움직이는 경력 13년의 배테랑 K씨는 “오줌통”이라고 했다. 시청~인천 혹은 시청~병점 등 운행시간이 3~4시간 되는 장거리 코스를 쉼없이 달려야 하지만, 화장실이 없어 마련한 자구책이다. K씨는 부끄러워했다. “운전레버를 놓으면 안되기 때문에 한 손으로는 오줌통을 잡고 ‘일’을 보고, 다른 손으로 레버를 잡아. 참 낯 뜨꺼운 사실이지만 여성 기관사는 물통 대신 비닐을 이용해야 한다고….” 전방을 주시하면서 소변을 보다 보면 오줌이 바짓가랑이에 묻는 것은 예사고 ‘조준’을 잘못해 바닥이 흥건해지기도 한다고 했다.

말문이 터진 K씨는 일반인은 상상조차 못할 사연을 털어놓았다. “대변은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봐. 이때 소변을 처리하기가 힘든데 심한 경우 문틈을 타고 객실로 흘러가기도 하는데 정말 얼굴이 시뻘개지지.” 기자를 힐끗 쳐다본 K씨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대ㆍ소변 과정이 복잡하잖아. 안되는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전동차 문을 열고 용변을 봐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 왠지 모를 미안함에 기자는 한동안 K씨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오후 12시가 훌쩍 넘어 전동차는 어느새 종착역인 인천을 돌아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부평역을 지날 무렵 당혹스러운 일이 생겼다. 기자에게 급한 ‘용무’가 생긴 것. 차마 페트병에 일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손잡이를 부여잡고 기관실 문을 열었다. K씨는 “평균 35㎞ 속도로 달리지만 인천이나 병점을 갈 때는 최고 100㎞까지 나오기도 한다”며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으로 속도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커브길을 도는 순간 다리마저 후들거릴 정도여서 포기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목숨 내놓고 대ㆍ소변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후 1시가 넘어 전동차가 시청역 도착을 앞두고 있을 때 K씨는 참았던 불만을 터뜨렸다. 차라리 분노였다. “마흔살이 넘는 나이에 우리라고 이런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고 싶겠느냐”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이의 부모로서 참 견디기 힘든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숨진 기관사무원과 절친한 사이였다는 그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뒤 굳게 입을 다물었다. 정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의 눈가가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다.

시청역에 도착하자 그는 “그래도 난 새벽마다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 학생들의 발이 된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낀다”며 기자를 내려주고는 종각역을 향해 출발했다. 그는 신설동역에 도착하면 소변으로 차 있는 물통을 비우고 널려 있는 신문지를 챙긴 뒤 다시 의정부행 지하철에 오를 것이다.

서울메트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인간적인 실태를 알고 있을까. 황춘자 홍보팀장은 헤럴드경제가 10일 ‘용두역사건’을 취재ㆍ보도하자 “사고자가 자살한건지, 술을 마신건지 모르는데 어떻게 화장실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는 등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냈다. 사태가 악화되자 그는 “역 중간중간에 간이화장실을 설치하는 게 대안으로 나오고 있다. 방관할 수 없는 일이기에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을 바꿨다.

김상수 기자(dlcw@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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