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부지런한 한국인, 한국 기업이지만 생산성은 높지 않다. 문제는 부지런한 비효율이다. 성실함과 유능함, 그리고 충성심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성과창출보다는 보여주기, 시간끌기, 심지어는 방해하기 등으로 조직의 힘과 자원을 낭비한다. 부지런한 비효율의 본 모습과 극복 방안을 살펴본다.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스포츠 스타는 누구일까?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 축구 스타인 호날두나 메시일까? 미국 NBA 농구 혹은, 미국 프로야구의 스타 중 한 명일까? 아니다.


Forbes지에 따르면 그 모두를 제친 주인공은 46전 전승이란 경이로운 전적의 미국 프로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Floyd Mayweather, Jr., 37세)이다. 그는 최근 1년 동안 단 두 경기만으로 1억 5백만 달러를 벌었다. 경기 시간으로 보면 1시간 12분만에 우리 돈 천억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인 셈이니 엄청난 효율이 아닐 수 없다.


그의 효율성은 링 위에서도 빛을 발한다. 작년 9월, 메이웨더는 멕시코의 국민복서 사울 알바레즈(Saúl Álvarez, 당시 43전 42승 1무,  23세)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었다. 그 경기에서 패자인 알바레즈는 526개의 주먹을 던지고 그 중 117개를 명중시켜 22%의 명중률을 보였다. 반면 메이웨더는 그보다 적은 505개의 주먹을 던졌으나, 훨씬 많은 232개를 맞춰 두 배가 넘는 46%의 명중률을 보였다. 힘은 덜 쓰고 많이 때리니 이길 수 밖에 없다.


군더더기 없는, 얄미울 정도로 효율적인 복싱. 그것이 메이웨더가 복서로서 결코 젊지 않은 37세의 나이에도 최고의 자리에 군림하는 비결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이제 시선을 사각의 링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한 경영 현장으로 돌려보자. 우리 기업들은 과연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을까?


아직도 헛손질이 많은 우리 기업


아직 우리 기업들은 효율적 복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의 노동 생산성은 높지 않다. 2012년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취업자당 노동생산성은 56,710달러(2005년 불변가격, 구매력평가기준)로 OECD 평균 70,222달러의 81%, G7 평균 80,780달러의 70%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생산에는 노동 외에도 많은 요소가 개입하는 만큼,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링 위에서 이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상대를 만났다면 제대로 싸우기 힘들 것이다.


일을 적게 해서 생산성이 낮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근로시간은 매우 길다. 2012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92시간으로 OECD평균 1,705시간보다 길고, 가장 적게 일한다는 독일(1,317시간)의 1.6배나 된다.


상대적으로 낮은 인당 생산성과 긴 노동시간이 결합된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더욱 낮을 수 밖에 없다. 역시 OECD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8.9달러(구매력평가기준)로 33개국 중 28위에 머물러, 가장 높은 노르웨이(86.6달러)의 1/3수준에 불과했다. 우리 근로자가 3시간을 일해야 노르웨이 근로자가 1시간 일한 만큼의 가치를 창출했으니 일당백(一當百)에 한참 모자란 ‘일당 3분의 1’인 셈이다.


오래 일하면서도 적게 거두어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격언까지 무색하게 만드는 한국 기업. 우리는 부지런한 비효율의 덫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효율적이지 못했던 효율화 작업, 그 이유는?


한국 기업이 비효율을 구경만 한 것은 아니다. 그간의 생산 현장 효율화 작업과 함께, 1990년대 중반부터는 회의를 줄이고, 문서를 간소화 하는 등 사무직의 생산성 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체감하는 업무 효율성은 여전히 높지 않다. 2013년 언스트앤영 한영 회계법인이 실시한 생산성 인식 실태 조사를 보자. 우리 직장인들은 전체 업무 중 비효율적 업무의 비중이 38%에 달한다고 응답했다. 그간의 노력을 감안한다면 큰 개선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듯, 사무직 효율성 제고를 위한 노력들은 ‘보고서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다룬 보고서’와 ‘회의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한 회의록’이라는 모순적인 또 다른 비효율만을 남기고 사라지기도 했다. 효율성을 위한 노력 자체가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갖은 어려움을 헤치고 성장해 온 한국 기업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런데 왜 효율성 개선에서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할까? 그 원인을 생각해보자.


첫째, 비효율에 대한 대증요법 중심의 접근을 들 수 있다. 비효율의 진정한 뿌리를 찾기보다는 과다한 회의, 보고, 문서화 등 드러난 증상을 완화하는 기법에 초점을 두어왔다. 회의, 보고, 문서화, 야근의 과다는 비효율 자체가 아닌 증상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증상을 낳는 조직의 토양과 문화이다. 그것이 바뀌지 않는 한 본질적인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두 번째 이유로는 비효율, 특히 부지런한 비효율에 대한 관대한 인식을 들 수 있다. 그간 우리의 성장을 뒷받침해 왔던 것은 새벽같이 출근해 밤 늦게까지 일하는 농업적 근면성이었다. 창의와 차별성이 중시되는 시대로 변화했어도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삼는 인식은 여전하다. 비효율적인 업무 관행을 극복하자고 말하면서도 일단 부지런해 보인다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비효율을 제거하지 못했던 이유를 논하기 전에 그것을 위한 확고한 의지가 있었는지를 먼저 질문할 필요가 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부지런하다는 이유로 안고 가기에 비효율이 너무 무겁다. 우리는 그간 생산량 증가를 위해 투입 시간을 늘리는 방법에 의지했다. 그러나 이미 평균 근로 시간이 길고, 인건비 수준이 높은 상황에서 이 방식은 현실적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투입량 증가가 산출물의 질과 창의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이런 사고는 이미 구시대의 산물이 되었다.


일부에서는 그간 인력합리화의 결과로 과거에 비해 적은 인력이 일하는 상황에서 장시간 일하는 관행에 손을 대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비효율 개선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 더 적은 자원을 가지고도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일의 경중을 철저히 따져 성과와 관련된 일에 집중해야 한다.


발상을 전환하자. 낮은 생산성은 바로 그곳에 개선의 여지와 잠재력이 숨어있다는 의미이다. 피터 드러커의 말과 같이 50배 이상 향상된 생산 현장의 효율성이 20세기 성장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생산 원가로 후발국을 상대하기에 한계에 이른 한국 기업의 유일한 탈출구일지 모른다.


부지런한 비효율은 무엇인가?


부지런한 비효율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투입 대 산출이라는 효율성의 정의에 비추어, 부지런한 비효율이란 구성원들이 노력을 기울여 일하지만(input), 그것이 조직이 바라는 성과(output)로는 이어지지 않는, 즉 개인의 노력과 조직 성과 사이의 연계 약화, 혹은 단절을 의미한다. 엔진이 돌고 연료가 흘러 들어가고 있지만, 바퀴로는 동력이 전달되지 않는 자동차에 비유할 수 있다.


늘어진 모습의 나태함과 부족한 의욕 같은 후진국형 비효율이 아니다. 모두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실속은 없다. ‘하는 일은 많지만, 되는 일은 없는 조직’, 이것이 부지런한 비효율이 만연한 조직의 모습이다.
이런 부지런한 비효율은 소극적일 수도, 적극적일 수도 있다. 일의 가치와 조직 성과에 대한 고민 없이 비효율적이라도 그저 주어진 일을 수행할 뿐이라면 그것은 소극적인 경우가 될 것이다. 반면에 관리상의 허점을 틈타 개인적 이익 추구를 위해 의도적으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한다면 그것은 적극적인 형태의 비효율이라 할 것이다. 조직의 성과를 개인의 성과로 전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기회주의(opportunism)라고도 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의도적인 비효율이다.


‘경쟁력 있는’ 부지런한 비효율


부지런한 비효율은 보호색을 지닌 야생동물마냥 몸을 숨기고 있다. 비효율적 업무 관행들이 모범적인 행동으로 권장되는 경우까지 있다. 조직에 완벽하게 적응한 부지런한 비효율은 어떤 보호색을 띠고 있기에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까?


● 비효율은 성실하다


부지런한 비효율은 성실하다. 동어반복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속성이다. 성실함이 곧 비효율은 아니지만, 반대로 비효율은 겉보기에 성실할 수 있다.


줄기차게 보고서를 만들고, 회의를 소집하고, 이메일을 뿌린다. 다만 그것이 조직 성과와 관련이 없거나, 나쁜 경우에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 건전한 성실과의 차이다.


많은 연구에서 오랜 시간 일하는 습관이 성과와는 큰 연관이 없으며, 구성원의 건강이나 창의력을 해치는 역효과가 있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근면과 성실을 미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에서 무언가 끊임없이 일하는 사람을 탓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무슨 일을, 왜 하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면 일단 좋은 평가를 하는 관행이 굳어져 왔다. 그래서 부지런한 비효율은 찾아내기 어렵다.


● 비효율은 유능하다


흔히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 사람)’를 비효율의 대명사로 꼽는다. 그러나 살아남은 비효율, 특히 기회주의적 비효율은 결코 멍청하지 않다. 조직과 관리의 빈틈을 교묘히 파고 들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능력과 감각이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행동만으로는 구분이 어렵고 내면의 동기를 봐야 한다. 진정으로 조직에 필요한 구성원은 자신과 조직의 목표를 일치시키지만, 비효율을 조장하는 구성원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유능하게 일한다. 그러나 그 차이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시카고 경영대의 케빈 머피(Kevin M. Murphy)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 국가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성장을 이끌기도 하지만, 이들이 불로소득을 노리는 지대추구자(rent-seeker)가 되어 성장과 부를 좀먹을 수도 있다고 했다. 유사한 일이 조직 내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유능해 보이는 인재가 사실은 팀웍을 깨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동료를 방해함으로써 조직의 비효율을 만들어 내고 있을 수도 있다.


● 비효율은 충성스럽다


비효율은 충성스럽다. 다만 조직이 아닌 개인, 특히 상사에게만 충성스러운 경우가 많다. 과도한 의전, 보고서의 양식에 치중하는 행위 등 비효율적 관행들은 상사에 대한 충성을 드러내려는 기회주의적인 행동인 경우가 많다.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켜 성과를 얻거나, 경쟁사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늘 가까이에 있는 상사는 다르다. 어떤 욕구와 선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사는 인사권과 평가 및 보상권이라는 고객과 경쟁사에게 없는 군침 도는 자원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개인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구성원들은 고객이나 조직보다 상사에게 집중하게 마련이고, 그 와중에 조직의 성과와 관계 없는 곳으로 누수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에 대한 충성과 상사에 대한 충성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한국의 조직 문화에서 상사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은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부지런하고, 유능하며, 충성스러운 구성원들이 곧 비효율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인재야말로 조직을 지탱하는 소금 같은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비효율은 그런 인재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꼭 필요한 인재의 탈을 쓰고 있는 비효율은 겉모습만으로는 잡아내기 어렵다. 일하는 방식과 동기를 면밀히 살펴봐야만 한다. 부지런한 비효율은 어떤 식으로 일하고 있을까?


비효율의 민낯


열심히 일하면서 뒤로는 이익과 자원을 까먹는 부지런한 비효율의 맨 얼굴을 정리해 본다.


● 보여주기


성과창출보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보여주기에 몰두하는 관행이야말로 부지런한 비효율의 대표이다. 성과를 당당히 인정받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성과가 창출되기 이전의 투입 노력이나, 성과가 아닌 다른 것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보여주기에 힘을 쏟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보여주기에 병든 조직에서는 흔히 실행보다 계획에, 실속보다 형식에 방점이 찍힌다. 구성원들은 내용이 빈약한 보고서를 멋지게 꾸미고, 회의 석상에서 멋진 발표를 통해 인정받고자 한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야근을 하기도 한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이 있고, 멋진 보고서가 있고, 감동적인 발표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실행과 성과는 없다.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은 대부분 고객이나 성과가 아닌 상사를 향해 있다. 잭 웰치가 위계적 조직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말했던 ‘모두가 CEO를 바라보고, 고객에게는 엉덩이를 들이대는 조직’이 되는 것이다.


● 시간끌기


부지런하다고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속도는 더딘,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끌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경우도 결코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의사결정의 책임 앞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조직학의 대가 에치오니(A. Etzioni) 등이 지적했듯,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의사결정을 방어적으로 회피하거나, 필요 이상의 정보를 수집하며 시간을 끄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도적인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책임회피를 위해 비효율 뒤에 숨어 꼭 필요한 의사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대안을 검토하는 하위자들은 보고서를 만들고, 회의를 거듭하며 불확실성이 사라지길 기다리고,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결재 단계 사이에서 줄을 타며 시간을 끌기도 한다.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위자도 마찬가지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보고서의 사소한 오류나 정보 부족을 탓하며 재작업을 지시해 시간을 끈다. ‘돌다리도 두드려본다’는 격언이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의사결정은 없다’라는 격언을 압도한다.


의사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쉬는 것은 아니다. 모두 정보를 수집하며 바쁘게 뛰고 있고, 보고서의 버전은 끝없이 올라간다. 그렇게 돌다리를 두드리던 한 순간, 경쟁사는 이미 그 돌다리를 건너 신제품을 내놓는다. 남은 것은 완벽한(그러나 이미 쓸모 없는) 보고서와 ‘우리의 판단이 틀리지는 않았어’라는 씁쓸한 자위뿐이다.


● 낭비하기


개인과 조직의 이해가 어긋난 상황에서는 조직 자원을 조직 목표 달성이 아닌 개인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도덕적 해이도 종종 발생한다. 2001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파산한 엔론사를 보자. 회사가 껍데기만 남은 상황에서도 구성원들은 회사의 돈을 물쓰듯 썼다. 거래 개발자들은 현실성 없는 사업계획을 가지고도 일등석을 이용해 해외 출장을 다니며 최고급 호텔에 묵었다. 회사 돈으로 업무와 관계없는 파티를 열기도 했다. 심지어 엔론이 파산하던 2001년에도 1,000만 달러 이상의 급여를 받아간 임직원이 15명에 달했다. 이러한 자아도취적 자원 낭비는 조직과 개인간의 목표 불일치 시 발생하는 대리인 비용(agency cost)의 전형이다.


한국 기업의 경우에는 과도한 의전(儀典)이 조직 성과와 무관한 낭비의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과도한 의전은 체면과 권위가 중시되고, 조직과 상사의 구분이 불명확한 한국의 조직 문화에 기인한 관행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과시적인 자의식과 상사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사심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면에서 도를 지나친 의전에는 기회주의적인 성격도 숨어 있다.


이러한 낭비는 단순한 비용의 발생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원이 낭비되는 와중에 고객이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 방해하기


흔히 경영을 전쟁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그 전장이 조직의 내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내부 경쟁의 이익이 외부 경쟁을 통한 이익보다 기형적으로 커지거나, 내부 경쟁에서 밀리면 생존이 어렵다는 생각에 자기 보호 본능이 극대화되면, 구성원들이 총구를 조직 내부로 돌려 내부 경쟁에 모든 힘을 쏟는 어처구니 없는 비효율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건전한 내부 경쟁은 상호 발전과 조직 성과 향상의 밑거름이다. 그러나 내부 경쟁은 열심히 일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스탠퍼드대의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 교수와 로버트 서튼(Robert I. Sutton) 교수가 말한 바 있듯, 제로섬(zero-sum) 형태의 강력한 내부 경쟁은 조직 내 모두를 패자로 만들 뿐만 아니라, 조직 자체도 패자로 만들 우려가 있다. 과도한 내부 경쟁 속에서는 나부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직의 목표가 무시되고, 협조와 의사소통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서로를 방해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엔론은 요란스러운 파산만큼이나 치열한 내부 경쟁으로 악명을 떨친 회사였다. 이 회사는 PRC(performance review committee)라는 시스템을 통해 매년 하위 15%의 직원을 퇴출하는 극단적인 내부 경쟁 정책을 사용하였다. 그 결과 조직 내에 협조가 사라지고, 동료가 자신의 모니터를 훔쳐 보는 것이 두려워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일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한 임원은 경쟁 사업부의 사업이 실패하자 승리의 V자를 그리는 직원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회사가 파산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의아한 일일 것이다.


● 분산하기


20세기 초 프랑스의 농업공학자 막스 링겔만(Max Ringelmann)의 실험 이후 널리 알려진 ‘사회적 태만(social loafing)’ 현상에 따르면 협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개인별 노력의 최대량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책임을 분산하고픈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조직은 구성원의 임무를 명확히 부여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권한과 책임의 선이 희미해지면, 책임을 분산시키려는 욕구가 조직에 비효율을 일으킬 수 있다. 불필요한 이메일의 남발이나, 안건과 관련성이 없는 사람까지 참석 시키는 회의에 따른 시간 낭비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들은 하루 평균 74회나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직장인들도 다르지 않다. 메일 확인에 한 시간 이상씩 낭비하는 예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정말로 필요한 내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회의도 마찬가지다. 회의가 곧 일이 될 정도로 회의를 쫓아다니지만 자신이 왜 참석했는지 모를 회의가 상당수다. 책임의 회피와 분산을 위해 일단 이메일을 통해 내용을 공유하거나, 혹은 꼭 필요치 않는 사람도 회의에 참여 시키는 것이다.


최근 마이클 맨킨스(Michael Mankins) 등 Bain & Company사의 컨설턴트들 역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쓴 글에서 조직 내 이메일이 폭증하고, 회의도 증가하고 있지만 그것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메일 체크와 회의 홍수에 귀중한 시간이 낭비되고, 고객에게 쓸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비효율을 일으키는 구성원은 소수일 것이다. 다수의 선량한 구성원들은 기존 관행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비효율적인 업무 관행의 1차적 책임은 그렇게 일하도록 게임의 룰을 만든 조직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무관심과 관행에 따르는 태도는 비효율이 자라나는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선량한 구성원들이라 할지라도 조직 비효율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하기는 어렵다.


비효율 극복을 위한 방향성


‘행복한 가정들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의 이유가 각기 다르다.’ 톨스토이(Leo Tolstoy)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의 첫 문장이다. 조직 속 비효율의 양상과 원인도 조직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비효율의 증상을 없애기 위한 천편일률적인 기법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성장추구 등 개인의 욕구와 조직의 성과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이 고민해야 할 포인트를 살펴 보자.


● 고객,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조직은 구성원의 힘을 모아 고객을 만족시켜 성과를 창출하고, 그것에 기여한 구성원들이 함께 그 결과물을 향유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고객을 위한 가치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리고 고객에게 기여하는 일만이 진정한, 그리고 보상받을 수 있는 ‘일(task)’로 자리매김 하도록 해야 한다.


조직 상층에는 고객이 없다. 따라서 하향식(top-down) 방식으로는 고객의 목소리를 경영에 반영하기 어렵다. 고객의 목소리를 조직 내부에 반영(outside-in)하려면 고객과 가장 가까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장의 구성원들은 이미 어떤 것이 고객 그리고 성과와 관련이 있는 일이고, 어떤 것이 불필요한 업무인지를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단지 현재의 조직이 그러한 일을 인정하지 않거나, 다른 지시를 내리기 때문에 그 일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피터 드러커는 한 병원에서 간호사들로 하여금 직접 고객(환자)과 관련 없는 일을 분리해 내고 본원적인 업무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단 4개월만에 생산성과 환자의 만족도를 2배 이상 향상시켰다는 사례를 보고한 바 있다. 고객인 환자를 가장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역시 늘 그들과 접촉하던 현장의 간호사들이었던 것이다.


● 구성원의 용병화를 막으라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자국의 시민으로 구성된 군대로 싸워야 하며, 용병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로 분열과 과도한 개인적 야심, 그리고 규율과 신의 부족과 함께 우군 사이에서만 용감하고 적군을 만나면 비겁해지는 용병의 특성을 꼽았다.


이 말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마키아벨리가 언급한 용병의 모습에서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는 구성원, 즉 조직의 목표가 아닌 개인의 목표를 추구하는 구성원의 모습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경제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잦은 구조조정 등으로 조직과 구성원간의 장기적 신뢰가 옅어짐에 따라 많은 구성원들의 용병화가 진행되었을 수 있다. 개인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용병화된 구성원들은 기회주의적 행동으로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


구성원의 용병화를 막기 위해서 구성원과 조직이 장기적인 이익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미 1980년대 U.C.L.A의 윌리엄 오우치(William Ouchi) 교수는 집단주의적 성격과 개인적 가치를 접목한 이른바 ‘Z형 조직’을 이상적 조직 형태로 제시한 바 있다. 물론 Z형 조직의 운영 원리인 종신에 가까운 장기고용, 비공식적 조직운영, 상대적으로 전문성을 경시하는 관행 등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문성의 개발을 전제로 한 장기고용의 실현, 개인간 차등보다는 조직 전체 성과와의 연계를 강화한 성과주의 등의 노력을 통해 구성원의 이해와 조직 성과 사이의 일치를 높이고자 하는 시도는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설립 후 굳건한 성장세를 이어 오며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The World’s Best Place to Work)’의 으뜸을 다투고 있는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 SAS를 보자. 이 회사는 2008년 불황으로 고객들의 발주가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도 CEO인 짐 굿나잇(Jim Goodnight)이 직접 구성원들에게 구조조정이 없을 것을 천명하고, 구성원들이 일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하여 결국 위기를 극복해 냈다. 구성원에 대한 신뢰가 조직 몰입을 높인다는 철학을 가진 이 회사는 평균 20%를 상회하는 이직률로 골머리를 앓는 IT 업계의 다른 경쟁사와 달리 2%내외의 낮은 이직률을 자랑하고 있다.


● 관점 변화가 선행되어야


비효율이란 결국 고객과 성과에 기여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의 노력이고, 그 노력은 상당부분 고객보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그리고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영자를 향하고 있다. 많은 비효율이 구성원들이 고객보다 경영자를 먼저 생각하는 문화, 즉 ‘윗 사람이 일하기 좋은 문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를 단절시키는 여러 관행과 조직 운영 원칙들 역시, 경영자의 철학과 방침의 산물이다. 고객 만족과 효율 개선을 위한 현장의 다양한 아이디어도 경영층의 결단 없이는 수용되지 않는다.
경영자가 구성원들의 노력이 고객과 조직 전체를 향할 수 있도록 다소의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 비해 보기가 어려운, 덜 꾸며진 보고서를 봐야 할 수도 있다. 구성원들을 회의에 모으기 어려울 수도 있다. 권위와 통제력을 일부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렇게 함으로써 구성원들이 고객과 성과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경영자에게 좋은 것이 반드시 고객에게도 좋지는 않다. 하지만 고객에게 좋은 것이라면 경영자에게도 좋다. 경영자 위에 고객이 위치하는 조직, 요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효율적인 조직이다.  <끝>


출처 : 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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